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랜시스 드레이크 (문단 편집) === 세계일주 === 1577년 ~ 1580년 동안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을 지나다가 폭풍으로 동행한 배 4척을 잃고 기함인 골든 하인드호만 마젤란 해협을 지나 [[태평양]]에 나와 마젤란 다음으로 그 해협을 통과한 기록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혼 곶과 [[드레이크 해협]]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후 [[칠레]]와 [[페루]] 연안을 북상하여 에스파냐 식민지와 갤리온 선박을 공격하여 금은보화를 약탈하고 태평양을 건너 자바에 도달하며[* 이 과정에 대한 꽤 달달한 떡밥이 있는데, 드레이크의 함대가 도중에 '''[[조선]]으로 향하여 조선수군과 교전을 벌였다는 설'''이 그것이다. 실제로 [[지봉유설]]과 [[선조실록]]에 [[선조(조선)]]의 치세에 [[잉글랜드]] 해군의 공격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긴 하지만, 이 해군 함대가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사략함대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인도양]]을 횡단하고 [[희망봉]]을 돌아 1580년 9월에 무사히 영국 플리머스 항에 귀환했다. 약 3년만의 귀환이었다. 이 때 드레이크는 노획한 보물 대부분을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바쳤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엘리자베스는 드레이크에게 작위와 훈장을 수여하고 일종의 명예 해군 제독으로 임명했다. 이때 바친 30만 파운드 가량의 재화는 당시 잉글랜드 왕실의 1년 국고 수입보다 많은 액수였다고. --인플레 안 일어나나--스페인은 자국의 상선을 약탈한 드레이크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잉글랜드 해군까지 지원해주면서 대놓고 드레이크의 해적질을 도와주었다. 이와 같은 잉글랜드의 태도는 당연히 스페인의 분노를 샀고 결국 이런 외교적 갈등이 스페인과 잉글랜드 간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